재개발 재건축과 상가 감정평가

요즈음 공사비 상승으로 인한 분담금 폭탄에 조금은 가려진, 하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구조적인 재개발 재건축의 어려움이 한가지 있다. 그것은 “상가”의 문제이다.
재개발 재건축은 기본적으로 공동주택을 시행하는 사업이다. 다만, 재개발 재건축 구역에는 주택 소유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주택이 국민의 거주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보면, 상가는 국민의 생계를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함께 한다.
노후화된 도시를 정비하는 재개발 재건축 사업에서 상반된 입장을 갖게되는 상가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살펴보자.
최근 상가의 지분쪼개기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린 바 있다.이는 상가의 지분을 통해 조합원이 될 수 있기에, 조합원의 지분을 취득하는 꼼수에 대한 방안으로 통과된 법안이다.
즉, 상가 소유자 역시 법정 조건을 충족하면 재개발 재건축의 조합원으로서 이익을 향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가 소유자는 왜 재개발 재건축에 상반된 입장을 갖는다는 것일까?
이는 상업용 부동산의 특성에 기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축”이 “구축”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 대부분 기존 도심에 개발사업을 시행하기에, 학교, 상권, 지하철 등 제반 환경이 이미 갖춰진 곳에 들어서는 주택으로 매우 양호한 입지의 신축 아파트로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하지만 상가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상가는 기본적으로 “수익형 부동산”이다. 즉, 수익이 발생해야 하며, 상가의 경우 대부분 “상권”이라고 불리는 것에 따라 상가 임대료가 오르내린다. 새건물이면 좋겠지만, 오래되고 낡은 건물이라도 상권이 좋다면 우리는 그 지역을 방문하게 된다.
상가는 특별히 새 건물이라고 인정받지 않는다. 오히려 재개발 재건축은 장기간 지속되는 개발사업으로, 재개발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오랫동안 형성된 상권이 사라지고 예전만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즉, 상가 소유자라면 해당 지역에 재개발 재건축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닌 이유이다..
주택 소유자인 조합원의 경우 재개발 재건축이 진행되면 향후 조성될 신축 아파트의 시세와 조합원의 권리가액의 차이만큼을 “조합원 프리미엄”으로 이미 시장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노후화된 빌라의 경우, 권리가액은 매우 작은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조합원 프리미엄이 높은 경우도 존재한다. 흔히 말해 적은 돈을 들여서 큰 수익을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상가는 이야기가 다르다. 보통의 경우 빌라같은 소형 주택보다 권리가액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상가 소유자라고 해서 주택을 두채, 세채 주지 않는다. 예외가 존재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재개발 재건축은 한사람에게 한 집을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1억원의 빌라에 조합원 프리미엄이 2억이 형성되었다면, 5억 상가 소유자에게도 조합원 프리미엄은 2억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상가 소유자로서 누리는 “현금 창출”은 재개발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필연적으로 상권이 쇠퇴하고, 상당기간 현금창출이 불가능한 시간이 존재한다. 월세가 나오지 않는 상가를 갖고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 필자가 현장에서 바라보면, 월세를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마어마한 부를 소유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 평생토록 아껴쓰고 저축한 자금에 대출을 보태어 정년 퇴직하신 어르신의 생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개발 재건축 이야기가 동네에 들리면 기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동시에, 흔히 말하는 비대위가 생기는 이유이다.
필자가 요즈음 진행하는 모 구역의 사례이다. 많은 추정분담금 검토 건 중 하나인데, 기존 상권이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상권이었다. 국유지 위에 약 50년 전에 지어진 낡은 상가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곳이다.
워낙 상권이 좋다보니 상당한 월세가 형성되는 듯 했고, 각종 평가자료, 거래자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국유지 위의 건물이라 사실 가치가 얼마 되지 않아야 했는데 대지를 소유한 인근 부동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구역 지정의 추정분담금 단계라 앞으로 정비사업의 갈 길은 멀었지만, 앞서 말한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나 활성화된 구 도심 상권과 재개발 재건축의 충돌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재개발 재건축은 이처럼 모두에게 기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재개발사업 같은 경우에 “공익사업”의 지위를 인정하여 타인의 자산을 “강제수용”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이유는 자명하다.
여러차례 필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재개발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은 우리나라 부동산이 집중적으로 공급된 시기의 노후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감소하는 구조에서 피할 수 없는 개발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감정평가사로 그 사이에서 업무를 진행한다. 객관적인 자료와 관련 법률에 의해, 조합원 분들의 재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엄중한 금액을 결정하는 감정평가사이지만, 필자 역시 사람이다. 특히 개발사업을 늘 대하며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는 필자의 경우 더욱 마음이 무겁다.
감정평가 실무기준에서도 특별히 재개발 재건축 감정평가에 “조합원 간의 균형”을 고려할 것을 추가로 규정하고 있다. 주택 소유자분들도 조합원이고, 상가 소유자분들도 조합원이다. 평가사로서 자산 하나하나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여러 근심과 고민에 쉽게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이다.
세상 만사가 그렇듯 누구에게나 좋기만 한 일이 없다. 누군가에게는 내 집 마련의 기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단절의 고민 사이에 법률과 자료와 전문가의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금액을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이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재민 약력
현 중앙감정평가법인 이사
전 농협 감정평가전문가 과정 강사
전 건설산업연구원 자산운용전문인력 강사
현 중앙감정평가법인 본사 심사역
현 1기신도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자문위원
현 인천연구원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