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와 감정평가사의 내일

툭 튀어나온 숫자에 숨이 헉하고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AI시대가 남의 일인줄 알았는데, 거래처에서 요청한 공장을 열심히 검토하고 통보하기 전에 AVM에 돌려본 직후다.

(*.AVM = Automated Valuation Model, 자동가치산정모형)

인건비가 비싼 순서로 AI가 대체한다더니, 그저 그런 인건비 업종이라 고도화가 늦어지는걸 반가워해야 하나 슬퍼해야 하나 하는 사이에 툭 받은 결과는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다.

고참이라 일터에서 심사를 하다보면 신입 후배들의 업무를 검토할 때 특히 긴장하게 된다.

MZ세대 와의 조우다.

혼 내서도 안되고 인재로 잘 키워 성장도 시켜야 하니 마음이 복잡하다.

단가x면적=감정평가액 의 논리로 보고서가 쓰여지는데, 결과인 감정평가액이 이상하다.

“ㅇㅇ씨, 혹시 이 숫자 느낌이 와요?”

“거래사례 단가에 본건 면적 곱했습니다!”

씩씩하다.

“혹시 차 뭐타요?”

쌩뚱맞게 차는 왜 묻냐는 눈치다.

“ㅇ나타 입니다.”

“새차는 요새 얼마나 해요?”

“3천~4천만원입니다.”

“그렇지, 그럼 누가 그차를 7천~8천만원에 샀다고 하면 어때요?”

“이상하죠.”

“만약, 사례 배기량당 단가에 우리배기량 곱해서 그 숫자 나왔다고 하면?”

“그래도 틀렸죠….”

“맞아요. 이 건도 그래요. 이 물건은 화장실두개,방셋 있는 빌라라서, 비슷한 사례 단가를 가져와야지, 쓴것처럼 근처라고 원룸빌라 사례로 곱하면 결과가 이상해.

K5와 쏘나타 비교는 말이 되지만, 모닝으로 쏘나타 비교는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그 결과가 말이 되나 안되나 현장에서도 조사하고 검토해야 합니다.”

그날 나는 말 많은 꼰대가 되었고, 다행히 툭 튀어나온 두번째 AVM 숫자는 그 친구의 평가금액처럼 이상했다.

아직은 단가x면적 개념이라 결과를 검토하는 수준까지는 오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고도화는 시간문제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문제는 필자만의 이슈는 아니리라.

온 인류가 맞닥뜨린 AI와의 공생,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십오년간 무수히 많은 평가를 정신없이 수행했을 뿐, 그닥 지혜롭지 못한 내가 인류에게 좋은 결론을 낼 수 있을거라 생각지 않는다.

과거엔 아파트 감정평가가 의미가 있었지만, 어느날 KB시세가 나오고 아파트 감정할 일은 거의 없어진 시기가 있었다.

그 일이 사라지고 업계가 위축되었을까?

단기적으로는 그랬다.

평가하던 물건을 더이상 평가할 일이 없어졌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에 KB시세라는 정량화된, 전국적인 자료를 기초로 더 큰 범위의 개발사업 컨설팅 업무를 무수히 많이 수행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은 툭 튀어나오는 AI에 의한 숫자가 가격으로서 어떤 뜻을 가지는지 풀어주는 존재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늘 새로운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마주하게 된 저 신박한 도구를 가지고 더 높은 단계의 사고를 해낼 수 있는 존재를 세상이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이재민 약력

현 중앙감정평가법인 이사

전 농협 감정평가전문가 과정 강사

전 건설산업연구원 자산운용전문인력 강사

현 중앙감정평가법인 본사 심사역

현 1기신도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자문위원

현 인천연구원 자문위원

출처 : 파이낸셜리뷰(http://www.financialreview.co.kr)